제 값은 제가 정합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창고 하나와 빚 4,200관. 나흘 남았다. 그래도 깎아 팔지는 않는다.
전체 회차
- 1화 유언장 낭독 중에 — 관 뚜껑을 덮은 지 나흘째, 변호사가 밀랍 봉인을 칼로 뜯었다. 붉은 조각이 탁자에 떨어졌다. 그는 접힌 종이를 펴서 촛대 쪽으로 기울였다. 창이 하나뿐인 방이라 낮에도 초를 켜야 했다. 리네 하란은 아버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옆에는 늙…
- 2화 팔 게 없다 — 서쪽 부두의 창고는 아침에도 어두웠다. 베른이 자물쇠를 세 번 만에 열었다. 문이 밀리면서 먼지 냄새가 밀려 나왔다. "열어봐요. 전부." 남은 직원 셋이 궤짝을 열기 시작했다. 리네는 등불을 들고 뒤를 따라갔다. 첫 번째, 마른 약초. 곰팡이. 두 번째, 도자기.…
- 3화 서류가 틀렸습니다 — 새벽에 출발했다. 마차 두 대에 염료 열다섯 자루를 나눠 실었다. 수리가 필요한 두 대는 두고 갔다. 직원 셋 중 둘이 따라오고, 나이 든 남자 하나가 창고에 남았다. 리네는 마차 앞자리에 베른과 나란히 앉았다. 해가 뜨는 걸 마차 위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아저씨…
- 4화 애 상대는 안 합니다 — 서구역 47번은 시장 끝이었다. 리네는 좌판 번호를 세 번 확인했다. 맞았다. 다리에서 가장 먼 자리, 창고 벽과 하수구 사이. 폭이 마차 한 대 길이도 안 됐다. 염료 자루를 내려놓으니 좌판이 꽉 찼다. 시장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 5화 나흘째 — 예복 상인의 이름은 하난이었다. 세이드에서 왔고, 성년식 예복을 짓는 공방 세 곳에 천을 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벽에 걸린 천을 두 번 만져보고, 물통에 남은 염료를 들여다봤다. "삼 년 묵은 게 왜 이 색이 납니까." "묵어서 이 색인데요." 리네가 말했다.…
- 6화 오늘부로 — 다리 끝 게시판에 새 공고가 붙어 있었다. 대못으로 네 귀퉁이를 박은 종이였다. 상단 이름이 열둘, 하란이 아홉 번째였다. 지나가던 상인 둘이 멈춰 서서 읽고는 리네를 보지 않고 갔다. "아저씨. 저기 제 이름 있어요." "…예." 베른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아침…
- 7화 하란 — 기름 궤짝을 창고 뒤편으로 옮기다가 벽 쪽 궤짝을 밀었다. 세라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분필로 궤짝 모서리마다 짧은 금을 긋고 있었다. "뭐 해요?" "제 칸이 장부랑 맞는지 세고 있습니다." "맞아요?" "여섯입니다." 세라가 다시 셌다. "여섯 맞습니다." "뭐…
- 8화 자릿세 — 도련 상회 하역장에 수레가 열 대 들어와 있었다. 화물마다 상회 낙인이 찍혀 있었다. 짐꾼들이 수레를 비우면 다음 수레가 그 자리로 들어왔다. 카시안 도련이 그 옆에 서 있었다. 리네를 먼저 알아봤다. "너 기름 팔았다며." "…어떻게 아세요?" "그 줄에 우리 좌판…
- 9화 출처란 — 요나가 궤짝 뚜껑에서 못을 뽑고 있었다. "뭐 해요?" "마차 짐칸 받침이 부러졌습니다. 이 궤짝이 높이가 맞습니다." 리네가 옆에 앉았다. 요나가 못 하나를 뽑아 손바닥에 올렸다. "이 못은 궤짝에 안 씁니다. 한 근에 여섯 관짜립니다." 리네가 못을 받아 봤다.…
- 10화 가용 마흔나흘 — 도련 상회 안쪽 좌판에 상자를 내려놓는 중이었다. 사람이 많았다. 좌판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고 옆 좌판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연합 사환이 가죽 문서통을 메고 왔다. "하란 상단." "저예요." 사환이 통에서 종이를 꺼냈다. 봉랍이 아직 붙어 있었다. 리네는 들고…
- 11화 편지 열 통 — 창고 문을 열어놓고 앉아 있었다. 팔 물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팔 수가 없어서였다. 검인이 정지되면 좌판에 물건을 올릴 수 없다. 올려도 사는 사람이 영수증을 못 받는다. 리네가 종이를 폈다. 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썼다. "아저씨. 검인이 있어야 하는 일을 다…
- 12화 두 번째 사람 — "한 명 남았어요." 리네가 보증서를 탁자에 놓았다. 옆에 명부 사본을 폈다. "라헬에 정회원이 둘이에요. 도련 상회하고 렌달 상회요. 렌달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어때요?" 베른이 규정집을 폈다. 한참 넘겼다. "안 됩니다." "왜요?" 베른이 한 줄에 손가락을 댔다.…
- 13화 벽에 썼던 것 — 집무실 탁자에 세라가 새 종이를 폈다. "도련 상회에 넣을 서류입니다. 무엇부터 적습니까." "자산 목록이요." 리네가 말했다. "저희가 뭘 가지고 있는지 보여줘야 보증을 서주죠." 세라가 칸을 그었다. 품목, 수량, 상태, 추정가, 출처. "현금 구백구 관입니다.…
- 14화 두 장 — 세라가 자산 목록을 두 장 만들었다. 칸은 똑같았다. 마지막 줄만 달랐다. > **(가) 자산 목록** > | 품목 | 추정가 | 출처 | > |---|---|---| > | 현금 | 은화 909관 | — | > | 창고 1동 · 마차 3대 | 은화 400관 | 상속…
- 15화 제가 낸 서류가 가짜예요 — 세라가 벽에 종이를 붙여놓고 매일 아침 줄을 하나씩 그었다. "오늘로 스무날입니다." 세라가 말했다. "재확인 착수가 칠월 이십육일이었습니다. 스무날입니다." "아저씨가 본 것 중에 제일 긴 게 서른사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베른이 말했다. "그럼 열사흘…
- 16화 종료 — 신고서를 낸 뒤로 닷새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요나가 마차 축에 기름을 먹였다. 세라가 장부의 아흔여섯 번째 칸을 채웠다. 마르틴은 창고 앞쪽에서 밧줄을 사렸다. 엿새째 아침에 연합 사환이 왔다. "하란 상단." "저예요." 봉랍이 붙어 있었다. 리네가 뜯었다. >…
- 17화 늦은 이유 — 리네가 밤에 편지를 다시 폈다. > *성년식은 시월 셋째 주입니다. 공방은 팔 주 전에 천을 받습니다. > 그러니 염료는 팔 주 전에 들어와야 합니다. > 오늘이 팔월 이십일일입니다.* "아저씨. 이거 이상해요." 베른이 등불을 들고 왔다. "하난 아저씨가 이 편지를…
- 18화 순서 — 세이드 시장은 지붕이 없었다. 천막이 줄줄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라헬보다 넓었고 소리가 더 컸다. 돈 세는 소리가 두 종류였다. 은화가 부딪히는 소리와, 그보다 얇은 소리가 섞였다. "아저씨. 왜 소리가 달라요?" "화폐가 둘입니다. 이쪽 왕국…
- 19화 열아홉과 스물여덟 — 리네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저씨. 이제 하나만 여쭤볼게요." 하난이 창틀에서 손을 뗐다. "보증 서주실 때 저한테 조건 하나 거셨어요. 청람은 아저씨한테 먼저 팔라고요." "걸었습니다." "그거 사천이백 관짜리 조건이 아니에요." "…" "제가 못 갚으면…
- 20화 값 — 구월 사일에 라헬로 돌아왔다. 창고 탁자에 세라가 주판을 놓고 앉아 있었다. 마르틴이 문 옆에 서 있었다. 리네가 명단을 탁자 가운데에 폈다. "설명할게요. 길어요." 세라가 주판을 옆으로 밀었다. "첫째, 성년식 예복은 해 질 때 색이 짙어져야 해요. 삼 년 묵은…